1.현대어역
이러한 가르침에 비추어 생각할 때, 설령 어떤 일이 있어도 법화경(法華經)을 믿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법화경을 수지(受持)하는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가 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될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그대로 부처를 비방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1.강의
이 어문은 “서로를 부처로서 존경한다”는 니치렌대성인의 광선유포의 가르침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설령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서로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는 인류의 평화를 쌓기 위한 규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 방황하고 실수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반드시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점을 끝까지 믿는 것이 법화경의 신앙입니다.
이케다선생님께서는 이 니치렌대성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해 나가는 것은 불법자로서의 삶의 근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신의 감정으로 사람을 꾸짖거나 후배에 대해 거드름을 피우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의 가슴속에도, 또한 벗의 가슴속에도 반드시 부처가 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인간혁명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현대어역
이처럼 마음 깊이 깨닫고 창제하는 제목의 공덕은 석존의 공덕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의 괴로움도 모두 부처의 경애(境涯)에 포함되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仏)의 몸과 국토도 범부(凡夫)의 일념(一念)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로다”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열네 가지 비방의 마음에 대해서는, 경문(経文)에 따라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2.강의
이 어문은 우리가 부르는 제목의 공덕이 석가불의 공덕과 완전히 똑같다는 니치렌대성인의 궁극적인 ‘평등 선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니치렌 대성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그 누가 부르는 제목의 공덕도 모두 평등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현대어역
이처럼 법문을 물어보시는 것은, 실로 후세를 염원하고 계신 분입니다.
경전에는 “능히 이 법을 듣는 자는, 이 또한 얻기 어렵도다”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 경은 올바른 부처님의 사자가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부처님의 본래의 뜻대로 설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경의 의미를 물어 의혹을 풀고, 잘 믿는 자 역시 얻기 어렵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3.강의
니치렌대성인은 문하생들의 ‘법문을 묻는 마음’을 ‘후세를 바라는’ 자세라고 찬탄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탐구하려는 ‘구도의 마음’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항상 구도심을 불태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현대어역
설령 아무리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지혜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사양하지 말고 이 경의 의미를 물어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법의 사람들은 자만이나 집착, 명예나 이익에 사로잡혀 “내가 저 사람의 제자가 되다니.
만약 저자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남들에게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라고, 항상 악한 마음에 머물러 결국에는 악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법사품(法師品)에는 “팔십억 겁(八十億劫)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온갖 보물을 다하여 부처님을 공양하는 공덕보다도 법화경을 설하는 승려를 공양하고, 후에 아주 잠시라도 이 경의 법문을 듣는다면, 나는 큰 이익과 공덕을 얻는다고 기뻐해야 한다”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경을 설하는 자를 섬기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귀신이나 축생이라도, 법화경의 일게일구(一偈一句)를 설하는 자를 “반드시 일어서서 멀리서부터 맞이해야 하며, 부처님을 공경하듯이 해야 한다”라고 설해진 도리에 따르면, 서로 부처님처럼 공경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보탑품(宝塔品)에서 석가부처님과 다보부처님께서 서로 공경하셨던 것처럼 해야 하는 것입니다.
4.강의
이 어문은 ‘겸허한 자세’와 ‘만인 존경’이야말로 구도의 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오만이나 명예, 신분에 대한 집착이라는 악의 근원이 성장을 가로막고 행복을 멀어지게 한다고 엄격하게 경계하셨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당기원영 당여경불'(마땅히 일어나 멀리 마중해야 하며, 마땅히 부처를 공경하듯 해야 한다)─법화경 행자를 존경하는 이 자세야말로 함께 싸우는 동지이자 구도의 사람을 맞이하는 창가의 영원한 정신이다”라는 겸허한 구도의 정신을 관철하셨습니다.
5.현대어역
이 삼미보(三位房)라는 인물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법화경의 법문을 설하는 자이기에 부처님처럼 공경하여 법문을 물어 보아야 합니다.
“법에 의하고 사람에게 의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
5.강의
이 어문은 ‘법에 의거하고 사람에 의거하지 말라(법어인불의)’는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근본 원리를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법을 말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곳에 니치렌대성인의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일본의 평화와 행복을 구축해 가기 위해서는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에 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대법을 유포하는 창가학회를 비판하고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밝히셨습니다.
6.현대어역
그런데, 옛날에 한 사람이 설산이라는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설산동자(雪山童子)라고 합니다.
고사리를 꺾고 나무 열매를 주워 생명을 이어갔으며, 사슴 가죽을 옷으로 만들어 몸에 걸치고, 조용히 불도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6.강의
설산동자의 이야기는 진실한 법을 구하고 불도를 관철하는 ‘구도의 자세’가 얼마나 존귀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설산동자는 설산이라는 엄격한 자연 속에서 세간의 명예나 이익보다 오직 순수하게 불도 수행에 힘썼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설산동자의 불교 설화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동자가 몸을 던진 상대가 나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법을 구하는 데 있어 상대의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 입장 등에 따라 분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라고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7.현대어역
설산동자(雪山童子)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자세히 세간을 관찰해보니, 생사(生死)는 무상(無常)의 이치이므로,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이 괴로움이 많은 세상의 덧없음은 마치 번갯불처럼 한순간이며, 아침 이슬이 햇빛에 금방 사라지는 것과 같다.
바람 앞의 등불이 쉽게 꺼지고, 파초 잎이 쉽게 찢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이 무상함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한 번은 저 세상으로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사후(死後)의 여로를 생각하니, 어둡고 캄캄하며, 태양이나 달이나 별의 빛도 없고, 하다못해 등불조차 없다.
그 어두운 길에 함께 갈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서는 친척, 형제, 처자, 권속이 모여들고, 아버지는 자애로운 마음이 깊고, 어머니는 슬픔이 깃든 정이 두터우며, 부부는 새우가 같은 굴에 사는 인연처럼 일생을 함께하며 떨어지지 않는다.
원앙이 같은 이불 아래 베개를 나란히 하고 희롱하듯 다정하지만, 저 사후의 여로에는 함께 가지 않는다.
어두운 길을 오직 혼자 간다.
누가 와서 선악(善悪)을 인도해 줄 것인가.
또한, 노인과 젊은이 중 누가 먼저 죽을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니, 늙은이가 먼저 떠나고 젊은이가 남는 경우도 있어, 이는 순서대로 된 이치이다.
그 탄식 속에도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늙은이가 남고 젊은이가 먼저 떠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어려서 부모보다 먼저 죽는 자식이며, 가장 슬퍼할 만한 것은 늙어서 자식보다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이다.
이처럼 생사는 무상하며 노인과 젊은이 중 누가 먼저 죽을지 알 수 없는 세상은 덧없는데도, 사람들은 밤낮으로 현세의 이익을 위한 행동에만 전념하고, 부처를 공경하지 않고 법을 믿지 않으며 수행도 지혜도 없이 헛되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후에 염라대왕의 심판정으로 끌려갈 때, 무엇을 양식으로 삼아 삼계(三界)의 긴 여행을 떠나고, 무엇을 배나 뗏목으로 삼아 생사(生死)의 넓은 바다를 건너, 실보(実報)와 적광(寂光)의 불국토에 이를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미혹의 인생은 ‘꿈’이다.
깨달음에 눈뜬 인생이야말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꿈과 같이 괴로운 세상을 버리고 깨달음의 현실을 구하자.”라고 생각하고, 설산에서 관념(観念)의 좌(座)에서 망상과 미혹을 떨쳐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불법을 구했습니다.
그 모습을 제석천(帝釈天)이 멀리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생각하기를,
“물고기 알은 많지만, 물고기가 되는 것은 적고, 암라수(菴羅樹)의 꽃은 많이 피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적다.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다.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사람은 많지만, 퇴전(退転)하지 않고 진실한 도에 들어가는 자는 적다.
모든 범부(凡夫)의 보리심은 많은 악연에 쉽게 미혹되고, 일에 부딪힐 때마다 변하기 쉽다.
갑옷을 입은 병사는 많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적다.
이 사람의 뜻을 시험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제석천은 귀신(鬼神)의 모습을 나타내어 동자의 곁에 섰습니다.
7.강의
이 어문은 설산동자의 ‘생사의 근원적인 질문’과 ‘꿈과 같은 현세에 집착하지 않고 진실한 법을 구하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자의 무상관은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보내는 엄하면서도 따뜻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삼세의 생명관에 선다면, 이번 생에서 죄업을 소멸시키고 영원한 행복의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내세에는 반드시 행복하게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지도하셨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마츠노전답서 현대어역+강의 파트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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